덴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042811
한 시간은 넘게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머리가 좌우로 떨어지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앞에 탁자를 내려놓고 팔을 얹은 다음 고개를 받쳐 든다. 그래도 시원치 않다. 어느덧 잠이 드는가 싶더니 받치고 있던 팔이 무너진다. 놀란 듯 다시 깨어난다. 시계를 본다. 지금까지 온 시간을 계산해보고는 웬만큼 잤다는 생각에 마음을 추스린다.
앞에서 안내원이 서비스 카트를 밀고 사람들마다 음료수를 제공하고 있다. 조금 기다리다가 카트 위에 있는 것들을 헤아려 본다. 콜라, 사이다, 물. 그렇다 사과 쥬스를 시켜야 겠다. 안내원에게 사과 쥬스를 달랬다. 얼음을 넣은 쥬스를 들이켰다. 몇알 남은 얼음도 빼놓지 않고 모두 먹었다. 작은 것들은 혀로 물고 있으면 이내 녹았다. 큰 어름 덩이는 조금 물다가 다시 이빨로 깨먹었다.
알고 보면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귀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경우를 보면 도착할 시간만 기다리며 졸다, 기내 방송을 듣다가, 무료하게 보냈었다. 작은 시간도 작은 보석을 다루듯이 잘 다듬어 간다면 시간을 주신 그 분이 기뻐하실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여러 가지를 얻었다. 먼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얼굴들을 보게 되었다. 17년 전에 만났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간 세월의 풍파가 남긴 상처가 얼굴에 그려져 있는 사람들. 그 상처로 인해선지 음울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모습들. 그 옛날에는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을 것만 같았던 이들이 이제는 많이 지쳐보였다. 아마도 자녀를 키우면서 겪어야 했던 험난한 세월이 그렇게 지치게 만들었나보다. 마주 앉아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 자신은 주관대로 목표를 잘 이루어 왔는데 아내는 암투병중이다. 두 손을 꽉 잡고 주로 눈으로만 말하는 사람들. 그간의 삶을 말로 하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눈으로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있는 그의 손으로 묵묵히 아픔을 전하는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30년 만에 만난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서 같은 동네에서 살다가 서로 가야 할 길로 가느라 헤어져 지냈다. 여전히 그때 모습은 남아 있었다. 아들 둘은 다 잘 성장해서 남부럽지 않게 컸다고는 하는데 아버지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눈에 초점이 없다.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서 여전히 절망의 눈초리로 허공만 바라보는 그런 눈빛이었다. 한때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망의 소식을 전해주던 사람이었는데.
사람들은 앞으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 꿈이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살아보면 꿈이 이루어지는 기쁨도 경험하겠지만 전혀 예기치 않았던 역경의 복병을 만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 복병과 싸우면서 미래의 꿈과 기대가 허물어져가고 마음에는 아픈 상처를 남긴다.
이번 모임을 마치면서 회장이 서로 5명씩 인사를 하라고 권한다. 죽지 말고 건강하여 내년에 다시 만나자고. 아마 회원들이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무엇을 이루겠다는 생각보다는 현실에 충실하며 건강하게 살자는 쪽으로 기울어진 듯하다. 궁극적인 물음이 더 이상 성공이 아니라 인생의 종점인 죽음이 되어버린 것이다. 무엇을 성취하겠다는 것 보다는 죽음 앞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이제는 소박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주어진 현재에 만족하면서 주어진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 생활, 그 사랑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보며 사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경쟁 사회가 가져다주는 미래에 대한 망상에 사로잡혀서 현실을 사람답지 못하게 산다면 분명 잘못된 것이다. 어린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자연을 체험해야 할 때에 아이의 미래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아이를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며 짐승 훈련시키듯이 교육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노년의 풍요를 준비한다는 미래의 망상에 사로잡혀 현재 자신의 인격과 건강을 팔아 노예처럼 살아가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살 수는 있겠지만 입맛은 살 수가 없다. 나이 들어 입맛을 잃어버리면 아무리 많이 쌓아놓은 돈도 기쁨을 줄 수 없다. 돈으로 여행 티켓을 살 수는 있지만 건강한 두 다리는 살 수 없다. 나이 들어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되면 세계 일주 여행을 할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림의 떡이 된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머리가 혼미해진다. 더 이상 써내려가기가 어려워진다. 아마도 생각의 흐름이 막힌 것 같다. 어떤 방도를 통해서라도 새로운 마음이 되어야 할 터인데 말이다.
자 그러면 수도원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 집회에 참석하면서 나의 모습을 돌이켜 보았다. 하나님께서 광야로 나를 보내신 이유를 찾아보았다. 거기서 홀로 외롭게 수도하면서 하나님을 경험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은 깨닫지 못하고 때가 되면 이곳을 탈출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집회를 통해 아마도 하나님은 나를 거기서 십자가의 도를 깨달을 때까지 묶어두실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영성운동에서 신앙인은 생활에서 구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십자가의 도를 깨달을 수 있으려면 어느 수도원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수도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루를 수도원 일정처럼 잡고 충실하게 오직 하나님만이 알아주시기를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더 이상 외적인 것들에 현혹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급하게 서두른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깨달으려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영적인 수도생활을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남에게 소개해서도 안 된다. 시간을 잘 분배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이해해야 한다. 왜 여기에 있는 가? 무엇을 하라고 여기로 보냈는가? 그러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러면서 나를 찾아가는 것이 십자가의 도를 깨닫는 것이다.
감정을 잘 조절해야 한다. 대화에서 논쟁에서 절대로 감정을 앞세우지 말라.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대화하라. 감정이 섞인 대화는 나중에 사람을 허망하게 만든다. 감정의 노예가 되지 말라. 십자가의 도 안에 있다면 더 이상 내가 말하지 말게 하라. 내 안에 계신 그분이 말씀하게 하라.
영어로 글을 쓰기 시작하라. 먼저 번역하라. 언어를 계속 유지하라. 물론 농사를 잘 지어라. 노동을 신성하게 여겨라. 시간이 정해지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하지 말라. 많은 책을 읽어라. 가족에게 시작을 할당하라. 교회에 시간을 할당하라. 영성을 위한 시간을 분명하게 정하라. 더 이상 시간에 노예가 되지 말라. 오늘을 주 안에서 누려라. 삶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남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할 수 있다.